원인균도 모르는데 어떻게 항생제를 고를까?
원인균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항생제 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 의사는 대체 무엇을 알고 약을 고르는 걸까? 세균성 감염이 의심돼 병원에 갔다고 해보자. 의사는 검체를 채취해 어떤 세균이 원인인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양검사와 항생제 감수성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감염이 심하거나 치료를 미루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항생제를 먼저 쓰기도 한다. 그러니까 조금...
원인균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항생제 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 의사는 대체 무엇을 알고 약을 고르는 걸까?
세균성 감염이 의심돼 병원에 갔다고 해보자.의사는 검체를 채취해 어떤 세균이 원인인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양검사와 항생제 감수성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감염이 심하거나 치료를 미루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항생제를 먼저 쓰기도 한다.
그러니까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아직 정확한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먼저 무기를 고르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무기는 표적이 필요하다. 미사일은 좌표가 있어야 날아간다. 그런데 항생제는 정확히 어떤 세균이 감염을 일으켰는지 확인되기도 전에 투여될 수 있다.
더 이상한 건 이것이 단순한 도박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범인을 모르면서 공격할 수 있을까?
비밀은 ‘이름’이 아니라 ‘특징’을 노리는 데 있다
항생제는 특정 세균의 이름표를 읽고 공격하지 않는다.대신 사람 세포에는 없거나 충분히 다른 세균의 구조와 생화학적 과정을 노린다.
대표적인 예가 세포벽이다.
많은 세균은 세포벽을 만들고 유지해야 하지만 사람의 세포에는 이런 세포벽이 없다. 페니실린을 비롯한 β-락탐 계열 항생제는 세균이 세포벽을 만드는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방해한다.
다른 항생제는 세균의 리보솜을 노린다.
리보솜은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이다. 사람 세포에도 리보솜이 있지만 세균의 리보솜과는 구조가 다르다. 테트라사이클린 같은 항생제는 이 차이를 이용해 세균의 단백질 합성을 방해한다.
DNA 복제나 RNA 합성, 엽산 대사처럼 세균과 사람 사이의 차이를 이용하는 항생제도 있다.
즉 항생제는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게 아니라, 문신을 보고 조직원을 가려내는 셈이다.
“너 이름이 뭐냐?”고 묻는 대신,
“너에게 이 구조가 있나?” “너는 이 방식으로 단백질을 만드나?”
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범인의 이름을 아직 모르더라도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반전이 있다.원인균을 모른다고 해서 아무 항생제나 고르는 것은 아니다.
의사는 감염이 일어난 부위, 환자의 상태, 그 상황에서 흔히 발견되는 병원체, 이전 검사 결과, 지역의 항생제 내성 양상 등을 바탕으로 가능성이 높은 범위를 추정한다.
범인의 얼굴은 아직 모르지만, 프로필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셈이다.
어디에서 사건이 벌어졌는지 알고, 그곳에서 어떤 범인이 자주 나타나는지도 알고, 어떤 무기가 그들에게 통할 가능성이 높은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능성이 높은 여러 세균을 포괄할 수 있는 항생제를 선택하고, 배양검사와 감수성 결과가 나오면 더 적절한 약으로 바꾸거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이것이 경험적 항생제 치료(empiric antibiotic therapy)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이게 바로 문제의 시작이다
정확한 원인균 하나만 겨냥하지 않는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원래 우리 몸에서 함께 살던 세균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함께 살아간다.
특히 장에는 복잡한 미생물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이들은 소화와 대사, 면역계와의 상호작용 등 여러 기능에 관여한다.
그런데 광범위 항생제를 사용하면 감염을 일으킨 세균뿐 아니라 그 항생제에 감수성이 있는 정상 미생물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항생제 치료는 때때로 장내 미생물 구성을 변화시키고, 일부 사람에게서는 설사 같은 부작용과 연결되기도 한다.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겨냥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에는 공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대가가 따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세균은 살아남는다
세균이 항생제를 보고 고민해서 방어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항생제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감수성이 높은 세균은 억제되거나 죽는다. 반면 우연히 내성을 갖고 있거나 내성 유전자를 획득한 세균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살아남은 세균이 증식한다.
내성의 방법도 하나가 아니다.
어떤 세균은 항생제가 결합하는 표적을 변화시킨다. 어떤 세균은 항생제를 분해하거나 변형하는 효소를 만든다. 약이 세포 안으로 잘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들어온 항생제를 밖으로 내보내는 efflux pump를 이용하기도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일부 내성 유전자가 세균 사이를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플라스미드 같은 유전물질을 통해 한 세균이 가진 내성 유전자가 다른 세균으로 전달될 수 있다.
그러니까 세균이 서로 모여서 항생제를 이길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는 데 유리한 유전정보가 세균 집단 안에서 퍼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항생제는 무엇을 알고 싸우는 걸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원인균도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항생제를 먼저 고를 수 있을까?
항생제는 정확한 범인의 얼굴을 확인하고 발사하는 미사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떨어뜨리는 융단폭격도 아니다.
범인의 이름은 몰라도, 범인이 어떤 종류의 생물인지 알고 그 생물학적 약점을 겨냥하는 무기다.
그리고 의사는 감염이 발생한 장소와 상황을 보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범인의 범위를 먼저 추정한다.
검사 결과가 도착하면 그 범위를 다시 좁힌다.
그래서 항생제 치료는 때때로 불완전한 정보로 시작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서 점점 정밀해지는 치료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이상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세균에서는 이런 전략이 가능하다.
그런데 왜 바이러스에서는 훨씬 어려울까?
바이러스는 세균처럼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세포가 아니다. 우리 세포 안으로 들어와 세포가 가진 여러 기계와 자원을 이용해 자신을 복제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히
“바이러스를 어떻게 죽일까?”
가 아니다.진짜 어려운 질문은 이것이다.
내 세포를 해치지 않으면서, 내 세포를 이용하고 있는 바이러스만 어떻게 공격할까?
Source & Further Reading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 Antimicrobial resistance
NICE — Antimicrobial stewardship: systems and processes for effective antimicrobial medicine us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 — Antibiotic Use and Antimicrobial Resistance Resources
Munita JM, Arias CA — Mechanisms of Antibiotic Resistance, Microbiology Spect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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